행운을 빌며, 지금은 작별을! Cheers!
이메일 맺음말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세상에 말해준다

2026년 8월 16일 게재
8월은 느긋하고 햇살 가득한 나른함 속에서 마음을 달래고 편안한 생각에 잠기는 때다. 적어도 며칠 전 이런 이메일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발신자를 알지 못했다. 발신자는 다가오는 약속을 확인하는 짧은 메모를 보냈는데, 마지막에는 그보다 더 짧은 두 글자, “KR”을 적었다.
처음에는 오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음 날 같은 발신자가 보낸 또 다른 이메일도 똑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Kind regards”라고 입력하는 데 필요한 12번의 키 입력이 너무 고된 나머지, 두 글자만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특히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업무 이메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낯선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친한 척하는 “KR”은 물론 성가신 사촌 격인 “BW”와 “Rgds”까지 쓰면, 무난한 “Kind regards”, “Best regards” 또는 “Best wishes”로 정중하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이 즉시 빛을 잃는다.
이메일 맺음말의 상태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이런 글을 쓰며 보내므로, 가장 심각한 문제만큼은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대학 교수들조차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 얼마 전 한 교수는 내게 “Bye for now”라고 썼다. 또 다른 교수는 “Cheers”라고 했는데, 영국인도 호주인도 아니었다.
이렇게 쓴 남자는 용서하겠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상하게 들리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은 맺음말인 “Cordially”로 끝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중에 봐요”와 그 비슷한 말들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 모든 표현은 맺음말 하나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미국 작가 버지니아 에번스는 베스트셀러 서간체 소설 『The Correspondent』에서 수많은 맺음말을 구사하며, 평생 편지를 써온 70대의 성미 고약한 시빌의 이야기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다. 초반에 나오는 시빌의 편지 중 한 통은 조앤 디디언에게 “아주 따뜻한 안부를 전하며”라는 어색한 문장으로 끝난다. 소설 속 디디언이 “사랑을 담아”라는 맺음말로 답장을 보내자, 시빌은 즉시 그 표현을 따라 쓴다.
최근 내 편지 상대들 가운데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택하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라는 맺음말을 선택하는 사람은 결코 없다. 이런 순진한 친근함의 표현에 짜증을 내는 건 까다롭게 구는 것 같지만, 나는 실제로 짜증이 난다.
다행히 거슬리는 이메일 습관은 때때로 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 “알겠어(OK)”라는 뜻으로 끔찍하게도 “K” 한 글자만 보내 답장한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혹은 내게 메일을 받고 읽었는지 확인해달라고 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부재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 배우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극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Thanks”로 맺음말을 대신한다.
왜 그런지 알겠다. 짧고,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글만 아니라면 불쾌하게 들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 “Thanks”와, 더 논란의 여지가 있는 “Thanks in advance”는 주제넘고 수동공격적으로 재촉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아마 쓰지 않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All the best”, “All best”, 그리고 기분이 내키면 쓰는 “All very best” 같은 맺음말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런 표현이 진심 없이 꾸민 듯한 인상을 준다는 말을 듣고,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그렇게 하듯 “Best wishes”를 쓰는 편이 낫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금요일이면 한때는 정말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말로 이메일을 끝맺게 됐다. “Have a good weekend”, 심지어 “Have a great weekend!”라고까지 쓴다.
같은 식으로 굴복한 결과, 이제는 모든 문자 메시지를 마침표로 끝내는 것도 그만뒀다. 덕분에 대화를 당장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1년쯤 전에 내가 이렇게 할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서신에 관한 규칙이 있던 시절에는 삶이 얼마나 더 수월했는가. 편지를 쓰던 시대에 태어난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는 “Yours faithfully”로, 아는 사람에게는 “Yours sincerely”로 끝맺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던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왜 그럴까? 낯선 사람은 충실함을 맹세받을 자격이 있고, 잘 아는 사람에게는 고작 진심만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역시 예전에 사람들이 사용하던 좀 더 별난 맺음말 몇 가지를 기억할 만큼 나이가 들었다. 다행히도 내게 편지를 쓰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표현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누군가는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힘내서 나아가세요”라고 썼다. 또 다른 사람은 “행운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물론 이런 표현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것도 가끔씩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규칙만 고수한다면 따분할 것이고, 직장 생활에는 이미 지루한 일이 충분히 많다.
pilita.clark@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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