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음식을 요리하는 즐거움
‘The Sims 2’부터 ‘Overcooked’까지, 비디오게임은 주방 일을 놀이로 바꾸고 먹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만족감을 드러낸다

프란체스카 캐링턴
게시일 2026년 8월 8일
열세 살 무렵, 나는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 2’에 푹 빠졌다. 플레이어가 심들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끌며 인간관계를 쌓고 현실을 닮은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매력은 단순했다. 내 오타쿠 기질 가득한 마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화 같은 캐릭터들에게 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 경우에는 요리였다. 심들은 디너 파티를 열고 유명 셰프가 되었으며, 프라이팬에 불을 붙이고, 울퉁불퉁한 미트볼과 랍스터 테르미도르처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음식 화면을 확대해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우스꽝스러운 각도와 기묘한 음영으로 표현된 음식은 누군가 ‘고기’를 클로즈업해 인쇄한 뒤 돼지갈비 모양으로 오려낸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게임 디스크를 밟았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 뒤로 컴퓨터 게임은 손도 대지 않았다. 지난해 ‘오버쿡드’를 소개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임 중 벌어지는 싸움 때문에 일부 플레이어들이 ‘이혼 주방’이라고 부르는 이 게임은, 시간이 다 가기 전에 당신과 게임 파트너들이 통통한 동물 주방 보조가 되어 최대한 많은 주문을 처리해야 하는 기이한 멀티플레이어 레스토랑 시뮬레이션이다.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이 게임은 내가 심즈에서 좋아했던 모든 것을 완벽하고 광란적인 게임 하나에 농축해 놓았다. 픽셀로 표현되어 묘하게 맛있어 보이는 원색의 요리, 새로운 요리를 발견한 뒤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성취감,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라는 노동이 그것이었다.
음식은 적어도 1980년대부터 비디오게임에 등장했다. 당시 팩맨이 미로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어치웠다. 마리오에게는 마법의 버섯이 있고, ‘버거타임’에는 사악한 피클이 있다. ‘캔디 크러시’는 음식 그 자체나 다름없다. 2006년에는 닌텐도 DS 요리 시뮬레이션 게임 ‘쿠킹 마마’가 이 장르의 첫 히트작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어머니의 오래된 레시피를 통해 타밀족의 뿌리와 다시 연결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벤바’ 같은 서사형 요리 게임과, ‘헬스 키친: 더 게임’이나 제이미 올리버의 ‘왓츠 쿠킹’ 같은 다소 조악한 브랜드 연계 게임이 등장했다. 일부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실제 음식과 닮은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파이널 판타지 XV’에서는 황금빛의 울퉁불퉁한 슈니첼 조각이 접시에서 삐져나와 있고, 스튜 표면에는 지방이 반짝인다.

하지만 나는 비디오게임 속 음식이 엉성해 보이는 편을 더 좋아한다. 심즈 2 파티에서 우라늄 유리처럼 빛나는 구형 버거와 베이크드알래스카를 보고 싶다. 생못처럼 붉은 새우와 갈색 덩어리를 잔뜩 뒤집어쓴 볏짚빛 노란 파스타도 원한다. 오버쿡드와 그 후속작 오버쿡드 2의 요리에는 내가 꽤 매력적으로 느끼는 정적인 2D의 기묘함이 있다. 음식이라는 관념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채워 넣게 한다. 재료를 구분할 수 있기나 하다면 말이다. 나는 늘 오버쿡드 2의 면을 옥수수 이삭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반죽 덩어리가 감자인지 달걀인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는 심즈의 프렌치토스트부터 젤다의 전설에 나오는 회복용 ‘빨간 물약’까지, 플레이어들이 비디오게임 속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보려 한 기록이 넘쳐난다. 한편으로 이는 팬덤을 창의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요리 게임의 중심에 놓인 기묘한 긴장에 대한 반응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요리의 보상은 대개 먹는 것이다. 반면 오버쿡드에서 주방을 싣고 있는 열기구가 땅에 추락하기 전에 치킨 피자를 서빙 창구로 내던져 전달했을 때의 보상은 다음 피자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요리 비디오게임이 소비자에게 하는 전복적인 약속이다. 보통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게 되며, 당신은 그것을 즐기게 된다는 약속이다.
오버쿡드 게임은 무엇보다 우스꽝스럽다. 목표는 스파게티를 팔처럼 늘어뜨린 미트볼 괴물 ‘에버 페킹’과 ‘언브레드’라는 좀비 무리를 물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을 그 자체를 위해 즐기는 기쁨을 가지고 장난치는 과정에서, 이 게임의 작고 다부진 요리사들은 어떤 장인정신의 철학 주변을 뒤뚱거리며 맴도는 것 같다. 요리사들이 재료를 썰고 볶고 날것 그대로의 재료를 이리저리 던지는 동안, 무언가를 만드는 데 들이는 노력이 결과물만큼이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플레이어를 부드럽게 이끈다.
채소를 써는 것처럼 평범한 일을 오락의 소재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이런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다정하고 긍정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게임은 애호박을 매끄럽게 써는 일이나 프리타타를 완벽하게 뒤집는 일, 샐러드드레싱이나 파스타 소스의 기름이 눈앞에서 유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법처럼,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만족을 떠올리게 한다. 요리 자체가 때로는 내게 너무 큰 즐거움을 안겨주어, 식사를 접시에 담을 때쯤이면 배가 고프지조차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주방일도 일종의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현실에서는 그보다 훨씬, 훨씬 더 재미있는 놀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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