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중국은 장쩌민과 주룽지에게서 배울 수 있다
협력적이고 자유화를 추진하는 리더십이 이어졌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번 주 열린 장쩌민과 주룽지에 대한 공식 추모 행사는 이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국가주석과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 이후 중국의 지도부와 정책 방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세계와 중국 자체가 애도할 수밖에 없는 변화다.
2022년 별세한 장쩌민의 탄생 100주년은 월요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치 엘리트들의 모임과 시진핑 현 지도자의 연설로 기념됐다. 시진핑과 최고위 측근들은 화요일 베이징 바바오산 화장터에 다시 모여,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장쩌민의 총리를 지냈으며 지난주 별세한 주룽지에게 작별을 고했다.
전직 지도자의 사망이 과거 정치적 혼란을 촉발한 전력이 있는 국가에서 이 같은 행사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공식 추모 행사에서는 장쩌민과 주룽지가 공산당에 충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이들의 재임 기간을 시진핑 체제 아래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일관된 개혁 과정의 한 단계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매우 현실적인 차이를 가린다. 장쩌민 시절 중국 지도부는 훨씬 더 협의적으로 운영됐다. 총리였던 직설적인 주룽지는 시장 자유화와 국유 부문 개혁이라는 자신만의 분명한 의제를 추진할 수 있었다. 시진핑의 첫 총리인 리커창도 곧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빠르게 사그라졌고, 현 총리 리창은 공개적인 정치 행보에서 상관의 그림자에 크게 가려져 있다. 한때 ‘독립적 사고’를 자신의 신조라고 표현했던 주룽지가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정책에 대해 당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할 의지가 있으리라는 점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시진핑의 개인 권력 강화와 무자비한 숙청에 위축된 최고위 당 간부들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장쩌민과 주룽지는 공산당 통치에 전적으로 헌신했지만, 시민들이 지방정부의 최하위 단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언론이 더 폭넓게 보도할 수 있도록 허용할 의향이 있었다. 이들의 재임期间 법체계는 강화됐고 정부 기관은 더 많은 권한을 얻었다. 반면 시진핑 집권하에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당의 지배력이 점점 더 커졌다.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주룽지는 중국 시장을 더 자유롭게 만들려 했다. 비대해진 국유기업을 통제하는 한편 더욱 역동적인 민간 부문을 육성했다. 장쩌민은 민간 기업가들을 당에 영입함으로써 정치 생활에서 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하향식 국가주의로 되돌아갔다.
시진핑은 이번 주 장쩌민을 추모하는 연설에서, 주룽지에 대한 공식 부고에서는 두 사람이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킨 공로를 각각 기렸다. 그러나 WTO 가입은 중국 시장을 외국 기업에 더 개방하겠다는 이들의 진정성 있어 보이는 비전 덕분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이후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에 대한 워싱턴과 브뤼셀 등의 불안은 국제 기업들의 환멸로 더욱 커졌다. 이제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올해 첫 7개월 동안 세계 최대 사모투자회사 10곳 중 어느 곳도 중국에 대한 지분 투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베이징이 장쩌민과 주룽지 시절 추진했던 폭넓은 자유화 의제를 계속 유지했다면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할 수 있었을까? 지금 중국은 역내 많은 이웃 국가에 덜 위협적으로 보였을까? 국내 수요가 더 탄탄하고 경제가 급증하는 수출에 덜 의존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의 현 지도자들이 장쩌민과 주룽지를 기억하는 동안, 적어도 그들에게서 배우려는 노력도 함께 하기를 기대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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